스토리매거진

손봉호 교수 유산기부를 통한 장애인 권익기금 조성,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
2022.04.19

밀알복지재단 초대 이사장,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밀알복지재단 초대 이사장이자, 한 평생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해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밀알복지재단에 13억 상당의 유산을 기부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유산기부 후원금이 장애인, 특히 가난한 나라의 장애인들을 위해 쓰이길 희망했으며, 단순 복지 사업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책과 제도가 변경돼 장애인 권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용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유산기부를 결심하게 된 순간부터 현재까지, 일생동안 장애인의 편에 서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낸 손봉호 교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Q. 유산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성경을 읽으며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평소 돈을 올바르게 써야함을 강조하는 강의를 하면서 ‘사람이 삶을 출발할 때, 스타트 라인이 같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저 앞에 서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저 뒤에서 출발하는데 불공정하지 않냐고, 유산을 자식에게 너무 많이 남기면 사회가 불공평해진다는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 후 그 강의를 들으신 분들이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사람들이 저 때문에 그 운동을 시작했는데, 제가 참여를 안 할 수 없지 않나요? (웃음)


Q. 가족 분들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가족 반대로 유산기부의 어려움을 느끼실 분들을 위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오래 전부터 ‘유산 남기지 않기 운동’을 해왔습니다. 자식이 다른 사람 신세 질 형편만 아니라면 유산의 70%는 기부하자는 것이 우리 가족의 생각입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유산을 기부할 것이라고 얘기했던 터라 아내와 아들, 딸 모두 내 의견에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기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건 우리 식구들이 엄청나게 아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지독한 '노랭이'입니다. 우리 집사람은 겨울에 난방도 안 합니다. 심지어 겨울에 집안 온도가 18도 이상 넘어간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겨울에 춥게 살고, 여름엔 좀 덥게 삽니다. 세수한 물도 한 번에 버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껴서 남는 게 있지, 다른 사람들처럼 쓰면 남을 게 없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만큼 노랭이는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게 있어 (유산기부를 한다고 했을 때) 문제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어야 유산기부가 가능하고 보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Q. 기금을 장애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고 부탁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밀알복지재단에서 과거 장애인 관련 일을 하면서 고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 고통 받는 존재는 장애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는 관계없이 가장 억울하게 고통 받는 사람이 장애인이고, ‘어려운 사람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부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그들이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손봉호 교수와 말라위 장애 아동


Q. ‘장애인 권익기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장애인도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장애인 가운데서도 아프리카 장애인 등 가난한 나라 장애인들은 훨씬 더 고통을 많이 당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장애인들도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엔 장애인들의 권리 주장이 어려웠습니다. 아주 오래전, 장애 아동 학부모들에게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학부모들에게 ‘(장애인의) 권리 좀 주장하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들도 유권자이고 국민들인데 왜 가만히 있냐고 했는데 요즘은 시위하는 걸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낍니다. 미국은 장애인 복지가 잘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하면 뒤쳐져 있습니다. 전 세계가 (미국의 장애인 복지처럼) 그 정도 수준으로만 된다면 참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동등한 권리를 행사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장애인 권익기금’을 만들었습니다.”


Q. ‘장애인 권익기금’은 어떻게 운영될 예정인가요?

“유산기부를 하면서 고민했던 지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업이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운영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권익기금은 원금을 사용하지 않고 기부금을 운용한 수익으로 지속적으로 사업에 사용하게 할 예정입니다. 둘째는 기금 운영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주된 기획과 결정은 재단이 전문성을 갖고 하겠지만 기금이 본래 취지와 가치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일종의 견제 및 모니터링을 하는 믿을 만한 운영위원들을 구성했습니다. 셋째는 장애인 권익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길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기금의 이름도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닌, 공적인 느낌이 들도록 지었습니다. 넷째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고통 받는 장애인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주로 아프리카 장애인들을 도울 계획이지만, 이들만을 위해 지나치게 한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른 장애인들도 도울 수 있도록 사용할 것입니다.


손봉호 교수


Q. 기부하신 소감은 어떠신가요?

“조금이라도 예수님을 닮게 된 느낌입니다. 나눔을 통해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게 되어 제가 참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가치를 배웠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이익만 생각했다면 기부 사실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해서는 어떤 게 더 이익인가 생각해보니, 장애인에게 사회가 더 관심 갖고 기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조용하게 있는 게 더 명예롭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장애인 한 사람이라도 덜 고통당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조용히 있는 게 나의 이익만 생각한 이기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래, 좀 떠들자’ 그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진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우리도 장애인을 위해 관심을 써야 되겠다, 한 푼이라도 보태야 되겠다.’라는 선한 영향력으로 전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장애인 권익기금’ 사례를 포함하는 고액 기부자 맞춤 기금이란?

후원자가 고액의 자산을 기부하면 재단이 이를 운용하여 사업을 수행하는 계획기부의 한 종류로 기금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후원자의 기부 의도에 맞게 기금 운영과 배분에 지속적으로 조언하는 후원자 맞춤형 사업을 진행하여 재단 설립과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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