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모아쁠레 공원. 환하게 내려쬐는 햇살과 푸르게 우거진 나무들. 한가로운 여유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에서, 조안씨와 제작진은 쓰레기가 가득한 손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돌아다니는 한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옆에 서서 함께 걸어가는 두 남자아이는 무언가를 찾는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걷던 중 갑자기 사라지는 한 남자아이는 첫째 본 힘(15, 남). 잠시 후 나타나 수레를 뒤쫓아 가는 힘의 손에는 어디선가 주워온 쓰레기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손수레 안에는 쓰레기더미에서 주워온 빈 병과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들로 가득했습니다.
"아침 다섯 시에 나와서, 여섯 시에 집에 돌아가요."
동이 틀 무렵, 엄마는 손수레를 끌고 나와 해가 질 무렵에야 집에 들어갑니다. 하루 열두 시간동안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는 것입니다. 삼 년 전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빠. 갑작스레 생계를 떠맡게 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첫째 힘은 그런 엄마를 조금이라도 돕고자 학교까지 그만두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너무 가난하고 힘들어 보였어요. 그래서 공부를 그만뒀어요.“
자기 몸집만한 쓰레기더미를 등에 이고 있는 셋째 짠에이(11, 여). 짠에이는 엄마의 손수레가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살피며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힘들지도 않은 지, 오늘은 옆동네까지 가서 쓰레기를 주운 짠에이가 엄마의 손수레를 발견하자 환한 미소를 띠며 달려갑니다. 짠에이가 등에 이고 있던 봉투를 수레 위로 쏟아 내리자 재활용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빈 페트병, 빈 캔, 커다랗고 무거워 보이는 고철덩어리까지. 짠에이는 태어나 단 한번도 학교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학교보다 거리가 익숙한 아이, 짠에이. 오늘도 짠에이는 공원의 쓰레기통을 뒤지며 쓰레기를 모읍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다 보니 사고도 많았습니다. 특히 셋째 짠에이는 지난 번 쓰레기를 줍다가 오토바이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얼굴과 몸에 흉터로 남은 상처들. "무서웠어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짠에이. 고작 열한 살, 어린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요. 짠에이의 마음만큼은 상처가 남지 않았기를….
아이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엄마는 비가 와도, 몸이 아파도 늘 쓰레기를 주우러 다닙니다. 그러나 생활은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대체 얼마나 더 이 거리를 헤매어야 할까요. 해 뜨기가 무섭게 쓰레기를 주우러 나오지만, 열두 시가 넘어야 겨우 한 끼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줍지 않으면 하루를 굶어야 하는 상황. 엄마는 거리에 나온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늘 마음을 졸입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현실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불쌍해요. 다른 집 아이들은 아침에 좋은 옷 입고 학교 가는데..." 엄마의 눈에서는 참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평범한 일이 이 가족에게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과도 같았습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여섯시간을 꼬박 일한 아이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반찬이라고는 삶은 소라가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투정부리지 않고 맛있게 먹습니다. 다섯 식구가 한 끼를 먹기 위해 드는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삼천 원. 하루종일 쓰레기를 주우며 버는 돈은 오천 원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적게 벌 때는 삼천 원에 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끼를 먹고 나면 저녁엔 쌀죽만 먹어야 합니다. 그래도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지금 이 시간이, 가족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조안씨는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일까 싶을 정도로 쓰레기로 가득한 마을. 나무와 양철판으로 만든 방 한칸짜리 집에 힘과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집안 구석에 꽁꽁 묶여있는 짐들이 보입니다. 지난번 집에서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가족들은 아직 제대로 짐도 풀지 못했습니다. 열두 시간 내내 밖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일을 하고 돌아온 엄마는 아이들을 씻기고 방 안을 닦습니다.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이것뿐이라는 생각에 엄마는 고단함도 잊고 집안을 돌봅니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힘. 학교에 가고 싶지 않냐고 물으니, 가고 싶지만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공부에 신경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어른스러운 본 힘이지만, 사실 힘은 고작 열다섯밖에 되지 않은 아이입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도 아닌 현실이 원망스럽진 않을까. 투정을 부리고 떼를 쓸 법도 한데, 고생하는 엄마를 먼저 떠올리는 힘은 그저 묵묵히 엄마의 일을 도울 뿐입니다. "저는 갖고 싶은 것이 없어요." 엄마 마음을 헤어릴 줄 아는 첫째 힘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마음에 조안씨는 힘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조안씨는 그런 힘과 가족들을 위해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공책과 스케치북.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안씨가 스케치북과 연필을 집어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특별한 선물. 그것은 바로 조안씨가 직접 그린 다섯 가족의 그림이었습니다. 늘 빠듯한 가계 사정 때문에 단 한번도 가족 사진을 찍어보지 못한 가족들. 그런 가족들을 위해 조안씨는 정성을 다해 가족들의 얼굴을 스케치북 위에 그렸습니다. 사진은 아니지만 가족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기를. 조안씨의 그림을 받아든 가족들은 서로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어보입니다. 조안씨 그림 속의 다섯 가족처럼, 가족들이 늘 웃음만 가득한 삶을 살기를….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힘의 가족들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더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