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시리아 난민 긴급구호팀 2진의 현장일지
밀알복지재단은 2013년 12월 19일 긴급구호팀 1진을 파견하고, 1월 13일 긴급구호팀 2진을 파견하며 시리아 난민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구호 활동은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자동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최대거주지, 베카(Bekka)지역의 사드나일(Saad Nayle)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곳은 시리아의 국경 지역입니다. 산을 하나만 넘어가면 고향에 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시리아 난민들은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재단은 시리아 난민 긴급구호 사업으로 500가정을 대상으로 식량키트 1, 2차 배분을 마쳤고, 향후에는 비식량 배분 및 밀알이동학교(Miral Mobile School)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1편
눈이 한차례 내려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2월 5일, 밀알복지재단 긴급구호팀 2진은 난민캠프를 돌아다니며 사업에 대한 수요조사 및 피드백을 위해 인터뷰를 실시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제 6 캠프의 리더이자, 일곱 아이들의 엄마인 파트메 파드 알 아흐마드씨였습니다. 파트메씨의 아이들은 텐트 앞 진흙탕에서 뒹굴거나 집 안에서 엄마 곁에 머물렀습니다.
밀알: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인가요?
아뇨, 보시다시피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심지어 먹을 것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니까요.
밀알: 아이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우리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이곳으로 넘어와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어요. 저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거나 심지어 제 어린 딸아이는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어요. 이러다간 문맹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저도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각박한 현실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기란 매우 어려워요. 저는 제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 우선 문맹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학교를 한 번도 다녀본 적 없는 아이에게 학교란 신기한 놀이터와도 같을 거예요.
밀알: 밀알복지재단에서는 지금 이동학교를 계획 중에 있고 곧 학교가 시작이 될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많이 기대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아이들은 지금 밀알이동학교를 너무나도 기대하고 있어요. 제 아들은 심지어 매일 머리를 깔끔하게 빗고 옷을 추스르고는 언제쯤 학교가 시작되는지, 선생님은 언제 오는지를 저에게 묻습니다. 시리아에 있을 때는 학교 가기 싫다고 매일 울던 녀석인데 여기서는 매일 학교를 기대하고 있다니…….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해요.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해야 하구요. 하루 종일 흙바닥을 뒹굴며 노는 것은 더 이상 이 아이들에게 놀이가 아닌 것 같아요.
밀알: 혹시 아이들이 특별히 원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을까요?
학부모로써 저는 일단 아이들이 아랍어를 올바르게 읽고 쓰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수학 수업도 필수로 있었으면 합니다. 아랍어와 수학 수업을 많이 진행해 주세요. 또 영어를 잘 하면 나중에 저희가 시리아에 돌아갔을 때 아이들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기회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쳐 주고 싶어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도 따로 있지 않을까요?
파트메씨는 인터뷰 내내 그녀 뒤에 숨어서 수줍게 얼굴만 내밀던 막내딸을 앞으로 밀었습니다. 큰 눈을 가진 막내딸 마람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파트메씨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주었습니다.
마람: 저는 영어 수업을 듣고 싶어요. 제 친구들은 ABCD 노래를 부를 줄 알지만 저는 몰라요. 그래서 친구들이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전 창피해지기도 하고, 속상해요.
파트메: 저희 가족은 언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운영해 준다는 사실이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까지도 설레게 해요. 저 뿐만 아니라 캠프에 있는 많은 부모들이 정말 깊이 감사해합니다.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의 이야기 2편
두 번째로 방문한 제 3 캠프에서는 파트메 술탄 알시크마니씨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현재 27살이고 4명의 자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남편이 없는 또 다른 여성과 가족을 이뤄 낡은 텐트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를 꼭 닮은 4명의 어린 자녀들은 서로 의지하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엄마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밀알: 레바논으로 넘어 오기 전 시리아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나요?
저는 시리아의 ‘호모스’라는 마을에서 남편과 4명의 아이들과 살고 있었어요. 현재 레바논에 온지는 4개월 정도 됐어요. 저희 가족은 시리아에서 꽤 좋은 환경에서 살았죠. 좋은 차와 큰 집, 부러울 것 없이 살고 있었어요.
밀알: 그런데 어떻게 레바논으로 이주할 생각을 한 거죠?
어느 날 남편이 차를 운전하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남편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들을 수도 알 수도 없었어요. 집 주변에서는 매일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남편 없이 저 혼자 4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저희 집은 공항 근처였는데 공항에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렸어요. 그래서 국경을 넘기로 선택한 거죠. 저는 아이들 넷과 함께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야만 했어요. ‘에르셀’이라는 국경 마을을 지나 산에서 아이들과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어요. 아직도 그날의 추위와 깊은 밤의 어둠이 잊혀 지지 않아요. 다만 아이들이 기억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에요.
밀알: 현재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사실 모든 것이에요. 커다란 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았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 부족해요. 저는 남편도 없어요.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가 얼마나 힘든지 상상 할 수 있겠어요
밀알: 현실적인 문제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아플 때 치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해요. 레바논의 치료비는 너무 비싸서 엄두를 낼 수조차 없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 엄마의 입장에서 제일 속상하죠. 이번에 밀알복지재단에서 주셨던 음식들 덕분에 이번 달은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었어요. 특히 가루우유는 저희 막내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어요. 줄 수 있는 것들이 콩, 밀가루 밖에 없었는데 아이에게 우유를 먹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
인터뷰 시작 후 단 한 번도 웃음을 보이지 않았던 파트메 술탄 알시크마니씨는 품에 있던 막내아이를 힘껏 껴안으며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습니다. 그녀는 아이에게 우유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해했지만 곧 떨어져가는 식량에 대해 걱정하며 미소가 옅어졌습니다. 생사 여부조차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어린 아이를 달랠 수밖에 없는 파트메씨. 우리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월 20일부터 약 2주 동안 긴급구호팀 2진은 2차 식량키트 배분가정을 조사하고, 1월 28일 바우처 배분, 1월 31일 식량키트 배분을 진행했습니다. 2차 식량키트 배분대상은 1차 배분 때 지원받지 못한 가정들과 새롭게 정착한 난민 가정들을 중심으로 선별되었습니다.
난민들은 식량키트가 담긴 트럭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급구호 팀에 환호를 보내며 감사의 환영과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시리아난민 식량배분 긴급구호는 단순히 구호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인 개발로 나아가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교육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아랍어, 수학, 영어, 체육수업을 진행하는 밀알이동학교를 운영할 것이고, 유아교육을 위한 어머니교실, 컴퓨터교실, 축구교실, 보건위생교육 등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난민을 위해 정성과 사랑으로 후원해주시는 존경하는 후원자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