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재단은 지난 11월 3일부터 4일간 중국 장애인지원사업 현장인 연길밀알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2012년부터 중국 현지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집’과의 협약을 통해 13명의 현지 장애아동들을 대상으로 특수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내 2명의 특수교사파견, 교육환경구축 및 운영비지원 등의 형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경계부근에 위치한 연길(Yanji)은 지역인구의 40%가량이 조선족으로 조선족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19세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북녘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찾아 연변지역에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 지금은 중국에서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연길 시내를 지나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조선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대부분 상점 간판들이 한어(한문)와 조선어(한글)가 동시에 표기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현지 정부에서 소수민족 문화보전을 장려하는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연길공항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20여분 정도 가다보면 주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빨간 벽돌로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곳은 바로 연길의 고아들을 돌보고 있는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집’입니다. 1992년 김학원, 안혜연 부부가 한국을 떠나 중국 연길의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여 2013년 현재 신생아에서부터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62명의 아이들이 김학원 부부를 ‘엄마, 아빠’라 부르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의 집 아이들 중에는 장애를 갖고 있는 15명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장애로 인해 병원에서 태어나자마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신생아에서부터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밤중에 부모가 사랑의 집 앞에 몰래 두고 떠나는 아이 등 일일이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랑의 집 장애아동들은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연길 전체인구 40만 여명 가운데 약 7%가 장애인이지만, 특수학교는 ‘연변 제1특수학교’ 한 곳 뿐입니다. 이 특수학교도 경도장애인 약 80여명 정도 밖에 수용할 수 없는데다, 중증장애아동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학교가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밀알은 지난 2012년 5월 이지연, 정진희 2명의 특수교육전문봉사자를 사랑의 집으로 파견해 연길밀알학교를 개원하였습니다. 기관 15명의 장애아동 중 수업이 가능한 13명을 대상으로 특수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연길밀알학교는 5세부터 13세 까지 밀알 1반(7명), 14세부터 27세까지 밀알 2반(6명)으로 구성되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밀알에서 특수교사를 보내기 전까지 사랑의 집 장애아동들은 집안에서만 생활했습니다. 먹고, TV보고, 자는 것이 이들 삶의 전부였습니다. 일 년이 지나도록 특별히 웃을 일도, 슬플 일도 없었습니다. 사랑의 집에 있는 직원들도 이러한 장애아동들의 삶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심지어 사랑의 집에 장애아동이 함께 지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밀알을 만나고 이 아이들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받게 되면서 아이들은 점점 자라갑니다. 이번 달에는 아이들이 교통기관에 대해서 배우면서 사회생활훈련의 일환으로 처음 택시를 탔습니다. 12살 아동 한 명이 진흙 묻은 신발을 신고 그대로 택시의자 위에 올라가버렸습니다. 택시기사가 화를 내셨지만, 밀알학교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또박또박하게 ‘아.저.씨.. 죄.송.합.니.다.’라고 하니 금세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소심해서 밀알학교를 시작할 당시 선생님과 눈도 못 마주치고, 수업시간 마다 울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밀알 1반에서 본인의 의견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연길밀알학교에는 서로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섞여 있고, 그 정도도 가지각색이라 수업의 수준을 맞추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어느덧 아이들은 반에서 몸이 더 불편한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밀알 2반의 신애는 뇌병변장애 1급으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힘듭니다. 하지만 같은 반 춘호의 도움으로 휠체어로 이곳저곳을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수업도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집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아주머니도, 아이들 등교를 위해 차량을 운행했던 기사아저씨도, 단기, 장기로 찾아오는 봉사자들도 이전엔 몰랐지만, 어느덧 사랑의 집에는 밀알학교의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아동들이 그동안 꼭꼭 숨어 지냈던 생활공간에서 벗어나 이곳저곳 다니며 먼저 밝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랑의 집 식구들은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목적 없이 살아왔던 아이들의 삶에서 스스로 삶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앞으로 좌충우돌 예측할 수 없는 이 아이들의 삶이 기대됩니다. 중국 연길에 있는 13명의 장애아동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주신 밀알 후원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지속적인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