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제3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 - 콩벌레
2018.02.12
콩벌레
김인주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시려 그늘을 찾아 걸어 다녀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며칠 전 쏟아지는 장맛비에 놀러 나왔다가 바짝 말라버린 기다란 지렁이를 피해가며 버스정류장으로 몸을 옮겼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무심코 아래를 보니 작은 콩벌레가 기어가고 있다. 발로 슬쩍 건드려보니 겁에 질린 작은 콩벌레는 이름마냥 콩모양으로 몸을 움츠린다. 옆에 잠시 서 있을 뿐인데 천적이라도 만난 것 마냥 잔뜩 움츠리고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 쪼그리고 앉았다. 두 손을 모아 햇빛을 가려주니 용기를 낸 콩벌레는 움츠렸던 몸을 풀어 작은 화단으로 열심히 기어간다. 웅크리고 있던 콩벌레가 돌돌 만 몸을 펴서 기어가려 할 때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 걸까...
 
훨훨 나는 새나 화려한 나비처럼 되고픈 마음을 품어 본 적조차 없다. 그저 난 작은 콩벌레였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조차 무서워서 온몸을 웅크리던 콩벌레... 그런 나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 있었다.
 
지금은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이지만 가난에 허덕여 자식들의 한 끼 한 끼를 걱정하셨던 부모님은 비싼 치료비와 고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나의 한쪽 눈을 내어주고 마셨다. 점점 한 눈의 시력이 멀어져 간다는 건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느 순간 희미하게 남은 한 눈의 시력은 자기 할 일을 놓아버리고 그나마 온전한 눈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사라져버렸다. 한 눈이 멀어져갈수록 난 점점 세상이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내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피곤하면 제멋대로 움직이는 나의 한쪽 눈을 언제나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많이 상처받고 놀림을 받아 몸이 웅크러질 대로 웅크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물려받은 나의 한 눈은 내 마음에 콩벌레를 살게 했다.
 
의료기술이 발전해 안경을 벗게 해주는 수술이 한창 유행하던 즈음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성인이 되어 큰 병원을 가보았다. 조금이라도 시력이 돌아올 수 있기를 고대했다. 접수를 하고 오랜 대기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에 들어섰다. 좁은 진료실엔 의사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라 젊어 보이는 수련의들이 몇몇 서 있었다. 담당의사는 나의 눈을 기계로 측정했고, 그 결과를 수련의들에게 설명했다.
 
신기한 듯 여러 명이 돌아가며 기계를 사이에 두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감당하기엔 난 어렸고 마음이 여렸다. 말 못할 창피함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가고 있었다. 수련의들에게 설명을 다 마친 의사는 내게 장애등급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혜택이 있으니 장애등급을 받으라며 선심 쓰듯 장애인등록을 위한 절차서류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난 공식적인 장애인이 되었다. 그날 알게 되었다. 이건 병이 아니고 장애라는 것을... 고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완전히 겁먹은 콩벌레가 되었다.
 
스무 살쯤 한창 예쁘다는 나이에 앞머리를 길게 늘여 보이지 않게 된 눈을 감추고 숨기려했다. 그 당시 지하철은 마그네틱 줄이 그어 잇는 작은 종이형태의 표를 구입해서 타고 다녀야했다. 동그란 구멍 뚫린 창 사이로 ‘부평역이요’하며 돈을 내밀면 잔돈과 함께 표를 던지듯 작은 구멍 아래로 나오던 때였다. 가난한 형편에 교통요금이라도 줄여볼까 장애인 신분증을 내밀어 보았다. 구멍 위로 표를 주며 목소리만 들리던 여자 직원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늘게 뜬 눈으로 신분증과 얼굴을 번갈아 보고는 색이 다른 표를 던지듯 구멍 사이로 주었다. 그 눈과 마주치는 순간 창피함에 더 이상 장애인증을 내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전철역에 작은 상자가 생겼다. 경로와 장애는 줄서서 그 상자에서 스스로 표를 꺼내 이용하라는 안내판이 새로 설치되었다. 그날따라 지갑엔 잔돈이 보이지 않았고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개찰구 직원도 없었다. 난 줄을 서서 표를 꺼내들고 개찰구로 향하는 순간 뒤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한 어르신이 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요즘 젊은것들은 양심도 없나 보구먼? 공짜표라고 막 집어 들고 가게?”
 
내게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려워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빨리 개찰구로 향하려 하는데 사람들의 눈빛이 내게 꽂힘을 느꼈다.
 
“말이 안 들려? 요새 젊은 것들은...뭘 배워서 저래?”
 
너무 놀라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께 가방을 들추어 장애인 신분증을 보여드렸다.
 
“...장애인도 가능한가? 시각장애? 멀쩡한데 장애인인 척 하는 거 아냐? 딴 사람 신분증 들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눈물이 어느 샌가 가방 위로 툭툭 떨어져버렸다. 큰소리가 나고 소란이 일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뚫고 역무원이 달려왔다. 역무원은 내 손에 들려진 신분증을 보곤 할아버지를 모시고 구석으로 가셨고 난 수많은 눈총을 온몸으로 맞으며 개찰구로 도망치듯 뛰었다. 드러나 보이지 않는 장애라 오해받기 쉽고 어디서든 상처를 더 깊이 받는다. 마음의 상처 딱지가 떨어지기 무섭게 내려앉는다. 그래서 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게 된다.
 
세상에 나와야 할 즈음 직장을 잡으려 장애 란에 표시를 할지말지 고민이 앞섰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장애혜택을 받으려한다며, 순서가 멀었으니 기다리고 더 불편한 분들을 위해 가능한 한 접수하지 말라했다. 그렇다고 장애표시를 하지 않고 일을 하고자 취업을 요청하면 정상인들과 다른 조금 어색한 모습에 핀잔을 주고 답답해했다. 정상인도 중증장애도 아닌 어디에도 낄 수 없는 경증장애인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나다.
 
홀로 몸을 움츠려 더 돌돌 말아대던 어느 날 장애인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장애인 일자리사업이라는 교육청에서 주관하고 학교에서 일하는 자리라 했다. 기쁨이 컸던 걸까? 며칠 출근을 하며 다른 장애인들이 버리고 간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 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자리인 듯했다. 1년 계약 일자리 사업 참여자로 근무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내게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듯했다.
 
낯설고 물선 곳이지만 일 년 동안이 콩벌레에겐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더 이상 콩벌레처럼 움츠려 들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마음속에 수십 년간 움츠려있던 동그란 콩벌레를 깨워 용기라는 따스함을 품게 했다. 무겁게 짓눌렀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 콩벌레를 세상으로 내보내주었다. 이런 나를 통해 장애를 다른 모습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1년뿐일 줄 알았던 자리는 용기에 대한 보상인 듯 재계약서로 12개월이 내게 더 쥐어졌다. 정식 일자리는 아니지만 나의 업무도 생겼다. 한눈으로 바라보던 어떤 세상보다 따스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많은 꿈을 꾸게 되고 희망이 생겨나 따스한 풀밭으로 가고 싶어졌다. 더 이상 몸을 움츠리지 않고 펴 보려한다. 두려움을 넘어 막상 기어보려 용기를 내어보니 세상은 따스했다. 신호등 경고음이 울린다. 쪼그려 앉았던 몸을 풀고 일어났다. 뛰어가 보지는 못해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보려한다. 따스한 작은 풀밭으로 열심히 기어가는 콩벌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