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자화상
이현주
나는 거울보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보통 심심하거나 마음이 우울할 때 거울을 보지만, 나는 무엇을 하든지 거울을 먼저 보고난 후 시작하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내 곁엔 작은 거울이 놓여있다. 나는 정말 그 작은 거울이 뚫어질 정도로 몇 시간씩 거울을 보고 있을 때가 많다. 내가 그렇게 날마다 몇 시간을 할애할 만큼 거울을 보는 데엔 어떤 이유보다도 심오한 뜻과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행복한 자화상을 그리기 위함이다. 날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얼굴을 조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 내 얼굴을 조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비록 짧았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밑받침이 된 내 학창시절의 추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25년이 지난 일이다.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있는 나는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계속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량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과목수도 많아지고 필기도 점점 늘어났으므로 내게 큰 난관이었다.
하지만 내게도 가장 자신 있게 잘하고 즐거움을 주는 수업시간이 있었으니, 바로 국어시간이었다. 내게 국어시간은 사막에서 만나는 오아시스와 같다고나 할까. 국어시간만큼 기다려지고 즐거운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국어선생님이 친절하고 상냥하셔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른 친구들은 국어시간만 되면 지루하고 어려워 잠이 온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국어시간만 되면 머리가 맑아지고 정말 재미있고 신바람이 났다. 어떤 날은 국어시간에 친구들은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어 선생님과 나만 열심히 서로 주고받는 그야말로 일대일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주옥같은 많은 글들과 시들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별이 되어 빛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과서를 통해 깊이 있게 만나는 시인들과 시의 세계가 너무 좋았다. 시어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와 그 시를 쓴 시인의 심정과 동경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오묘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문학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사명감을 깨닫고 희망의 등불을 밝혀놓았으리라.
어느 날인가. 국어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글을 내가 어눌한 발음으로 소리 내어 읽었다. 그 글의 제목과 내용이며 지은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글을 다 읽은 후 선생님 질문에 내가 대답했던 그 글속에 글귀는 지금도 늘 기억한다.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질문하셨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글귀가 있다면 무엇이니?”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에 와 닿던 글귀인 ‘사람은 날마다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며 사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더니, 선생님이 “어머, 그래 선생님도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현주와 선생님이 공감했구나!” 말씀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셨다. 내가 선생님과 공감했다는 것도 기분 좋았지만, 정말 그 말이 내 마음에 메아리처럼 깊은 울림으로 와 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나의 얼굴을 아름답게 조각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교과서에 나온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배우면서 그 의문의 해답을 얻었다. 그때 처음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윤동주 시인을 사모하게 되었고, 그의 시에서 샘솟는 순수한 생명의 숨소리와 매력에 나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시절 <자화상> 이라는 시를 배우면서 나는 깨달았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그 시속의 사나이처럼 어쩌면 장애라는 그림자를 지닌 내 모습을 앞으로 살아가면서 거울에 비춰볼 때,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미워지고 싫어서 돌아설 때도 있고 자기연민에 빠져 그저 주저앉아 눈물지을 때도 있겠지만, 내 자신이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소중히 여길 때 비로소 행복해지고 희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외모보단 내 마음과 영혼을 더 밝고 건강하게 가꿀 때, 비로소 날마다 나의 얼굴을 아름답게 조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그렇게 깨달았던 것을 지금도 늘 기억하고 마음속에 새긴다. 오늘 이 아침에도 나는 중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 시속의 등장하는 사나이처럼 거울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대할 때면 처음엔 마음에 썩 들지 않는다. 불혹이 넘은 여자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척 동안인데다가, 왠지 바보스럽고 외롭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거기에 늘 왼쪽으로 돌아누워서 자고 엎드린 자세로 앉아 있기 때문에 왼쪽 뺨과 눈 부위가 약간 부어올라있다.
그리고 내 얼굴표정은 한순간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몸에 뒤틀림뿐만 아니라, 내 얼굴은 항상 힘겹게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있다. 이렇듯 내 모습에선 내 또래 여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성숙한 매력과 향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때는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밉고 싫어서 사진도 잘 찍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외모적인 아름다움만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님을 이제 나는 안다. 한참을 거울 속에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측은해진다. 또한 그렇게 혼자 조용히 한참동안 거울 앞에 있게 되면, 몸에 긴장이 풀려 뒤틀림과 흔들림이 좀 잦아들고 얼굴표정도 한결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진다. 그럴 때면 내 얼굴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그리고 나는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 어느새 내 삶의 평화롭고 정겨운 이야기와 풍경들이 언제나 잔잔하게 물결치며 흐르고 있음을 본다. 나는 이렇게 날마다 거울을 보며 나의 얼굴을 아름답게 조각하고 희망의 붓으로 행복한 자화상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금 그리고 있는 내 자화상이 완성되어 하늘나라 미술관 벽에 걸리는 그 날, 혹시라도 내가 사모하는 윤동주 시인과 한자리에서 함께 보게 될 때에 밝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미소가 담긴 자화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