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이정현(22·여·지적장애 3급)씨는 지난 1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곧장 빙판으로 이끌었다. 연습복을 입고 새로 맞춘 스케이트를 신은 이씨는 스핀과 스파이럴 등 각종 피겨 기술을 선보였다. 기술 구사 도중 실수도 있었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성공할 때까지 계속 시도했다. “스핀 돌 때 동작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 봐야죠.”
이씨가 운동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한 2009년 때부터다. 서울 마포구 상암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고교 1학년 때 강당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교사의 눈에 띄어 ‘장애인 롤러스케이팅 선수’로 추천을 받았다. 지적장애로 언어능력은 떨어졌지만 운동신경은 남달랐다.
이씨는 3학년이던 2011년 여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스페셜올림픽 세계하계대회에 여자 롤러스케이트 부문 국가대표로 참가해 100m, 3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3관왕에 올랐다.
이씨의 재능을 눈여겨 본 고교 교사는 그를 스페셜올림픽 피겨대표팀 이태리 감독에게 소개했다. 롤러스케이트가 하계올림픽에서 항시적으로 채택되지 않는 종목이라 지속적으로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이 감독 앞에서 생애 처음 스케이트를 탄 이씨는 잠재력을 인정받아 그해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훈련을 꾸준히 받을 순 없었다. 척추장애 6급으로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는 아버지와 식당 일을 하는 어머니의 수입으로는 3남매를 키우기 어려웠다. 이씨 언니도 척추측만증을 앓는 장애인으로 고교 졸업 후 생업전선에 나섰지만 형편은 쉽사리 펴지지 않았다. 결국 이씨는 대학 진학과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1년여간 패밀리 레스토랑, 출판사, 인쇄소 등을 전전했다. 하지만 장애로 인해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이 감독에게 2013년 평창 스페셜올림픽 세계동계대회 참가를 제의받았다. 경제적 어려움에 천식까지 겹쳐 출전 여부조차 불투명했지만 그의 재능을 알고 있던 동료 피겨스케이팅 선수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대회 2∼3주 전 겨우 훈련에 합류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훈련에 매진한 그는 피겨스케이팅 개인 부문 은메달을 차지했다.
메달 획득 후 일상으로 돌아온 그에게 지난해 9월부터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밀알복지재단과 KB국민카드가 후원하는 ‘저소득장애인운동선수지원사업’ 후원 대상으로 선정돼 운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자신의 부인이 전도한 이씨를 교회에서 만나 그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김기훈 마포밀알선교단 부단장이 추천한 것이다. 그는 이씨가 선수 생활 은퇴 후 사회복지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난해 국제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토록 지도하기도 했다.
이씨에게는 스페셜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부문 금메달을 따는 것 못지않게 소중한 바람이 있다. “자신을 인도하고 후원해준 마포밀알선교단이 지금보다 더 넒은 공간에서 불우하고 많은 장애인을 돌볼 수 있었으면 해요. 또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시선으로 보지 말고 사랑으로 품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