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지팡이로 떠나는 소풍?
밀알복지재단 램프취재단, 죽을 뻔 했지만 우린 아직도 설레입니다.
- 장애인이 되어 떠나는 ‘소풍’ 활동을 지속해온 아홉명의 봉사자. 3년간 흰지팡이와 휠체어로 다니며 느낀점을 말하다. - 2011년, 밀알복지재단을 통해 시작한 봉사활동을 통해 3년간 장애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어 안대를 하고 흰지팡이로 서점가는데 5시간이 걸려, 죽을 고비도 많아. |
안대를 착용한 청년은 휠체어를 밀며 두 시간 째 지하철을 환승하고 있다. 휠체어에 탄 사람은 눈이 되어주고, 안대를 착용한 사람은 발이 되어 이동한다. 이들이 책 한권을 사기 위해 이동한지 다섯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답답해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지요. 그리고 정말 힘든 건 오르막과 계단이에요. 처음 휠체어를 탔을 땐 경사로에서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 크게 다칠 뻔했어요. 그리고 지하철에선 엘리베이터를 찾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구요.”
휠체어에 앉아있던 김태훈(건설회사 근무, 30살)씨의 말이다.
지하철 환승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단과 경사로가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걸고 넘어야 하는 고개인 것이다.
안대를 차고 있던 박용호(그집그국수집 운영, 30살)씨는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 경사로나 계단이 장애인에게 이렇게 위험할지는 꿈에도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길을 만들거나 건물을 짓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죠.”라며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었다.
이들은 실제 장애인이 아니다. 8명의 청년으로 구성된 “밀알복지재단 램프취재단”은 어느 날 밀알복지재단을 통해 “장애체험”활동을 제안 받게 되었고 2개월에 한 번씩 모여 장애인이 되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휠체어에 앉고, 안대를 차고, 일정을 짜며 사진을 찍게 된지 어느덧 3년. 지난 2011년 5월부터 장애인이 되어 소풍을 떠난 여덟 명의 청년들은 어두운 길을 밝히는 램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밀알복지재단 램프취재단”이라고 이름을 정하고 2개월에 한 번씩 장애인이 되어 여행을 떠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램프취재단의 리더로서 여행일정과 사진촬영, 여행 후기를 작성하고 있는 정지영(아동문학가 및 사진작가, 34살)작가는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말했다.
“처음 활동할 때는 정말 힘들어서 죽을 뻔했어요. 왜 이 활동을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많이 했죠. (웃음) 하지만 매번 여행을 할 때마다 그동안 장애인들은 정말 힘들게 이동했구나,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어려웠겠구나 등을 느끼면서 보람도 느끼고 이들의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비장애인이 지하철과 버스로 10정거장 정도 이동하면 갈 수 있는 서점마저도 휠체어와 흰지팡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여행이나 다름없이 기나긴 여정이라는 의미로 이들은 본인들의 활동을 “소풍”이라고 표현했다.
“큰 맘 먹고 가는 것이 소풍이잖아요. 어디로 갈지 장소를 물색하기도 하고, 음식이나 구급약품을 챙기기도 하고, 카메라도 챙기죠. 그리고 전날 밤 설레어 잠 못 이루기도 하죠. 우리가 이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에요. 설렌다는 표현이 다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요. (웃음)”
밀알복지재단 램프취재단의 구성원은 다양하다. 국수집 사장, 어린이집 교사, 건설회사 직원, 금융회사 직원, 아동문학작가 및 사진작가 등 바쁜 일정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소풍장소를 정하고 함께 갈 사람들을 모집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부터는 실제로 장애인 소녀와 함께 소풍을 다녀보기도 했다.
비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이 되어 안대를 차고 휠체어에 앉아 다니면서 한편으로 실제 장애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는 김태훈씨는 “멀쩡한 저희가 휠체어를 타고 다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한 번 욕먹고, 넘어지는 것으로 몇 명의 사람이라도 저희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면 위험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넘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장애인들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살펴봐 줄 것을 이야기 했다.
“저희가 이 활동을 한 것은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해 보자는 밀알복지재단 측의 제안이 재밌을 법해서 시작했죠.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대단히 변했습니다. 길을 다니면서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예상하게 되니깐요.”
램프취재단의 장애인이 되어 떠나는 소풍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특별히 2013년도부터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좋은 장소와 건물, 가게 등을 소개하는 지도그리기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이 지도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고민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램프취재단을 기획한 밀알복지재단 홍보팀 김미란주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재단의 가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참여활동을 고민하던 중 뜻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며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장애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흰지팡이의 날‘이 재정된 1980년. 그 당시 리처드 후버박사는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흰지팡이를 만들고, 그들의 인권 보호를 외쳤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리처드 후버 박사의 이념과 가치를 우리 현대인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을 배려하고 있을까?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장애인들의 편의성과 우리는 그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램프취재단의 장애인이 되어 떠나는 소풍 이야기 연재시리즈는 “밀알복지재단 홈페이지(www.miral.org)” 공감코너의 특별한소풍 게시판을 통해 볼 수 있다.
밀알복지재단(www.miral.org)은 사랑과 봉사, 섬김과 나눔의 정신으로 1993년 설립되었으며 국내에서 장애인, 노인,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분야의 44개 시설과 3개 지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의 17개국에서 소외된 이웃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후원문의 : 02-3411-4664, www.mira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