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속으로 나이를 새기며 가지를 뻗고, 잎을 채워가는 나무는 그 자체로 희망이 된다. 조건 없이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전해지는 햇살과 바람 속에서 자라는 나무. 그 푸른빛은 누군가에겐 잔잔한 휴식이며, 누군가에겐 활기찬 에너지이다.
조건 없는 온전한 연결 속에서 휴식과 에너지를 전하는 숲의 푸른빛. 이것은 가족이 가진 색과 같다.
매일을 자그락거리며 남보다 못하다 툴툴대지만, 막연함의 끝자락에서 결국 찾게 되는 가족은 지친 아빠의 무릎에 힘을 더하고, 여자를 엄마로 거듭나게 하고, 자녀가 세상을 마주하기 위한 마음을 빚게 한다.
공원의 황홀한 푸르름 안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가족봉사단을 만나본다.
특별한 사랑으로 특별한 지도를 채워가는
가족봉사단 이야기
밀알복지재단은 장애인이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드는 ‘특별한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던 중, 부모와 자녀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고, 마침내 지난 4월 ‘가족봉사단’이 발대식을 통해 활동을 시작하였다.
냉장고 속에 있다 나온 음료수마저 연신 땀을 흘리던 7월의 마지막 날. 가족봉사단원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몸을 누이는 호사를 마다하고 보라매공원 서문 무궁화동산에 모였다.
보라매공원 지도, 수첩과 볼펜, 카메라 그리고 활동을 위해 직접 구입했다는 휠체어를 준비해 모여드는 가족들의 모습은 가히 ‘봉사단’이라 불릴만했다.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황준필 님은 청소년기 자녀들과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장기적인 봉사활동을 찾던 중, 밀알복지재단의 ‘특별한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를 접하게 되었다. 자녀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들은 학교 친구의 가족도 자연스럽게 뜻을 함께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세 가족이 함께 가족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5월 첫 조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가족봉사단은 격월로 조사활동을 진행하고, 정리한 자료를 기반으로 장애인을 위한 지도를 제작한다.
▲ 부모님들은 늘 앞장 서 조사활동을 이끈다.
“함께 사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본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이들은 이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그 시작, 학부모가 아닌 봉사단원이라는 이름으로 친분 없는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저 가족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길 바라는 같은 마음으로 활동에 참여하였던 부모님들은 함께하는 시간들 속에서 학창시절 동창이었던 서로를 알게 되기도 하고,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동년배로서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덩달아 아이들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또래 친구와 함께 어울리며 생각과 마음을 키웠다.
누나만 있던 막내에게는 남동생이 생겼고, 남동생만 있던 맏이에게는 여자형제가 생겼으니 TV 시대극에서나 그려지던 ‘이웃사촌’의 정겨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부모님은 휠체어 체험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무생각 없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걱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만, 시간이 더해져야 영양을 가득 품은 푸근한 장독이 되듯, 훗날 이 시간을 열어봤을 때,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으로 느낀 것들이 귀한 가치로 아이들에게 젖어들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지도하고, 격려할 뿐이다.
한편 자녀들은 가족들,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더불어 봉사도 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너무 뻔한 말을 한 것 같다고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들이처럼 자연스레 어울리는 활동 가운데 아이들만의 방법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녀들은 휠체어 체험을 통해 장애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5cm가 절벽이다.”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한 가정은 조사활동을 위해 직접 휠체어를 구입했다. 이 휠체어 덕분에 가족들 모두가 장애인이 마주하는 수많은 어려움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보라매공원은 휠체어가 다니기에 잘 정돈되어 있지만, 군데군데 야트막이 턱이 있어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혼자 이동하기에 어려운 장소가 있다. 부모님과 아이들은 그 공간에 멈춰 서서 번갈아가며 턱을 넘는 체험을 했다.
초등학생인 막내의 순서, 아이가 턱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노부부가 다가와 아이의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문턱을 넘으려 애쓴다고 생각 한 것인지, 측은하게 바라보고 말도 붙였다. 웃지도, 웃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부모님도, 아이들도, 바라보던 사람들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보듬는 세상을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기를.
▲아빠와 아이들은 활동을 통해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다.
“휠체어로 함께 걸어요.”
티셔츠가 한순간도 마르지 않았던 더운 날이었지만 부모님들은 공원 곳곳을 세심하게 방문하여 조사하였고, 끊임없이 자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은 보라매공원의 식물들을 보며 새로운 질문을 건네었고, 어른들은 조사와 관련한 크고 작은 질문을 아이들에게 건네었다. 오순도순 휠체어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이 가족 간의 사랑과 활동의 의미를 잔잔히 전했다.
흩어져 활동을 한 후, 호수 앞에서 모이기로 한 가족들. 공원이 넓어 서로를 찾지 못해 딸은 “아빠~”를 외쳤고, 아빠는 딸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상봉 아닌 상봉을 했다.
보라매공원 남문 쪽에 있는 호수에는 색색의 조명 사이로 다양한 형태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음악과 어우러지는 음악분수가 있다.
한껏 땀을 흘린 후, 선선한 저녁 공기와 함께 음악분수를 보고 있자니 감사함이 밀려온다.
봉사자들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지도인 만큼 장애인들의 삶에 힘이 될 것 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가족들은 ‘특별한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를 위한 야외활동 중에 달리기도 하고, 큰 소리고 웃기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은 어른들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마음에 담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어느 순간, 넓어진 생각과 넓어진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눌 것이다.
특별한 지도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는 날이 한걸음 더 가까이 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