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
이 이야기는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비슷한 조건으로 여행하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같이 느껴보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뇌병변이라는 장애를 가진 정민이가 실제로 함께 동행했습니다. 정민이는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양수를 마셔서 세상에 나오지도 못할 뻔 했지만 감사하게도 아픔을 딛고 세상에 나온 소중한 친구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겪은 일 때문에 장애가 생겼지만 엄마를 닮아 너무 예쁜 중학생이랍니다. 시각장애인 역할이었던 용호는 이번 소풍에서는 안전을 위해 안대를 벗고 도우미로 동행했습니다.
후니는 요즘 왠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모르게 울적하기도 하고 외로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후니는 그 원인을 찾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뭔가 생각난 듯 무릎을 탁 내리쳤다.
“맞아. 가을이잖아. 남자는 원래 가을을 타는 법이지!”
갑자기 가을 남자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더니 조그만 눈을 더 작게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딘가 가을 여행이라도 떠나야겠군.”
그렇지만 다리가 불편한 후니가 멀리 여행을 가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멀지 않으면서도 가을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가 있을까? 외로운 가을 남자의 마음을 채워줄 곳은 어디일까? 결론을 쉽게 내리지 못한 후니는 결국 용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을 남자가 갈만한 소풍 장소로 어디가 좋을까?”
“가을 남자?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정말 좋은 곳을 알지.”
용호는 후니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용호가 의기양양하게 추천한 곳은 바로 미술관 옆 동물원! 과천서울대공원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어서 두 군데 모두 한꺼번에 방문하기 좋다. 게다가 주위에 나무가 풍성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가을 산책으로도 더할 나위가 없었다.
“좋아. 그럼 과천으로 출발! 용호 너도 당장 과천으로 와!”
“음. 그래. 대신 특별한 친구를 한 명 데리고 가지.”
“여자야? 남자야?”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밝히기는! 여자아이야.”
“그래? 그럼 허락할게.”
그렇게 셋의 가을 소풍이 결정되었다.
tip.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동물원 입구나 미술관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서 걷거나 코끼리열차를 이용해야하는데 장애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에는 미술관주차장을 이용하면 동물원과 미술관을 가깝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주차장에는 7-8대의 자동차 전용주차 공간이 있습니다. 미술관을 이용하면 주차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술관 앞에서 기다리던 후니는 멀리서 오는 용호와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자아이는 용호만큼이나 키가 크고 용호보다 훨씬 날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너 여자친구 생긴 거야?”
그렇지만 대답을 듣지 않고도 가까이 오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괜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잘 아는 동생이야. 정민이라고. 인사해.”
정민이는 쑥스러운 듯 용호의 뒤에 숨어서 몰래 후니를 보고 웃었다.
“정민아 오빠 친구 후니야. 쑥스러워 하지 말고 인사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정민이 때문에 둘은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후니의 워낙 친근한 외모와 유머 감각 덕분에 정민이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용호보다 후니와 더 친해진 듯 같이 떠들고 휠체어도 밀어주게 되었다.
“우선 미술관 구경부터 하자.”
“응.”
후니의 말에 정민이는 휠체어를 밀며 대답했다. 정민이 덕분에 후니는 용호의 도움 없이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tip. 국립현대미술관 상단 주차장에는 장애인 주차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서 바로 휠체어를 대여할 수 있습니다. 전화를 하면 미술관 직원이 금방 와서 도와줍니다. 미술관 내외부에는 휠체어로 이동할 수 있게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고 미술관 내부는 휠체어를 타고도 감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셋은 이것저것 둘러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도 신기했지만 어린이 미술관이 수준에 딱 맞았다. 어린이 미술관에서는 직접 만져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은 미술관이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나서야만 했다. 왜냐면 다들 너무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셋은 서둘러 동물원으로 향했다. 동물원 안에는 좀 비싸긴 해도 먹을거리가 많았다. 동물원에 가서 동물은 보기도 전에 식당을 찾아가서는 허기진 배를 달랬다. 그러고 나자 다시 기운이 나며 동물을 볼 생각에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동물원 대부분은 휠체어를 타고도 이동할 수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서로 부딪힐까 조심스러웠다. 몸이 약한 정민이도 구경하느라 정신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해야만 했다.
tip. 장애인은 동물원에 무료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입장 외에 부대시설을 이용할 때에는 비용을 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리프트 같은 것들은 따로 요금을 내야 합니다.
미술관과 동물원 모두 아주 재미난 곳이었지만 정민이는 사실 제일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리프트 타기. 동물원과 미술관 사이에는 리프트를 탈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처음 왔을 때부터 정민이는 리프트를 보고 내내 그걸 타고 싶었던 것이다. 리프트는 스키장에 있는 리프트와 같은 것으로 동물원 정상에서 입구까지 그리고 다시 동물원 아래 주차장까지 이어져 있었고 줄에 매다린 리프트를 타고 둥둥 떠가듯이 이동할 수 있었다. 동물원 구경이 슬슬 지겨워진 정민이는 두 오빠들을 조르기 시작했다.
“리프트 안타요. 리프트?”
두 오빠들은 동물원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결국 정민이 등쌀에 못 이겨 리프트를 타기로 했다. 사실 두 오빠들은 리프트가 무서워서 어떻게든 타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정민이를 이길 수는 없었다.
“이거 타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
“난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두 오빠들은 벌벌 떨었지만 정민이는 신이 나서 웃었다.
“리프트 고고!”
거부할 틈도 없이 결국 셋은 모두 리프트에 올라타게 되었다. 순간 몸이 두둥실 떠올랐고 이내 눈 아래로 멋진 가을 풍경이 펼쳐졌다.
“와! 진자 멋지다!”
가을 남자 후니는 우울한 기분이 언제 들었냐는 듯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고, 무서워하던 용호도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은 듯 했다. 정민이는 당연히 만족스러워하며 풍경을 감상했다. 풍경 저편으로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고 특별했던 가을 소풍도 행복하게 끝나고 있었다.
Lamp
Lamp는 세상을 밝혀 따뜻하게 하자는 의미로 7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입니다. Lamp의 봉사자들은 실제 장애인이 아닙니다. ‘조금 특별한 소풍’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장애인이 겪을 어려움들을 체험해보고 실제 장애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쓴 여행기입니다. 장애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이 코너를 연재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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