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지도, 함께 만드는 세상’
▲ 사진설명
(위) 아름다운 돌계단이지만 휠체어로 들어갈 수 없다 / 한 개의 계단이지만 휠체어로 들어갈 수 없다
(아래) 배수구 구멍에 휠체어 바퀴가 빠지기도 한다 / 경사가 급해 실제 이용이 힘든 경사로도 있다
분위기 있는 돌계단, 경사진 길 위에 있는 예쁜 카페, 계단으로 올라서야 갈 수 있는 전시관... 우리가 평소 쉽게 지나치던 장소들이 누군가에게는 좌절의 장소가 될 수 있다.
“한 개의 계단이 절벽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많은 장애인들이 복지관에만 가고, 새로운 곳에 가지 못해요. 저는 군대에서 부상을 당해서 하반신이 마비되었어요. 휠체어를 타고 처음 외출하던 날이 기억나요.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죠.”
- 유경재 특별한 지도그리기 서포터즈 -
경재씨는 친구와 약속을 하고 나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구에 문턱이 없어서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지, 장애인화장실이 있는지는 웹 서핑을 해도 정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휠체어로 이동이 가능한 식당을 추천해주면 밥을 사겠다며 주변에 알렸다고. 경재씨와 같이 외출에 두려움을 느끼는 장애인을 위해 밀알복지재단은 ‘특별한 지도’를 만들었다. 서울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장애인을 배려한 길인지 살펴보고, 장애인이 갈 수 있는 문화시설, 생활시설을 찾아 지도에 표시했다. 지하철역 몇 번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장애인화장실과 주차장은 어디에 있는지, 입구가 평평한 식당은 어디인지, 지도를 보고 조금이나마 문밖으로 나설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직접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화장실을 만들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적어도 정보의 부재로 인해 외출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며,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서 지도를 만들었다.
▲ 사진설명
(위) 2010년 장애체험 '특별한 소풍' 활동 모습. 한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한 사람은 안대를 쓰고 주요 관광지를 탐방했다 / 2014년 장애인을 위한 지도를 만드는 '특별한 지도그리기' 활동 모습. 안국역 감고당길을 걷고 있다
(아래)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 장애인화장실의 모습 / 고객의 소리함에 장애인화장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불편사항을 적어 개선에 대한 답변을 받기도 했다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2010년도부터 장애인의 외출을 돕는 활동을 해온 밀알복지재단 김미란 대리, 정지영 작가, 2014년도부터 장애인의 입장에서 지도를 검수해준 유경재 서포터즈. 또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식당과 카페를 찾아서 하나 하나 지도를 채워나간 16명의 서포터즈들과 추천 장소를 멋진 사진으로 담아준 5명의 재능나눔 사진작가들. 지도를 만들면서 한 사람이 결코 작지 않구나.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느꼈어요.”
– 장혜영 밀알복지재단 간사 -
2010년 밀알복지재단에서는 한 사람은 안대를 착용하고, 한 사람은 휠체어를 타고 서울 곳곳을 누비는 장애 체험 활동을 했다. 휠체어에 앉아 이동하던 김태훈씨는 “휠체어로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서 정말 답답해요. 그런데 그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요. 평소에는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휠체어를 타고 가면 모든 사람들이 쳐다봐요.” 라며 장애인을 길거리에서 만나기 힘든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2013년도부터 장애인의 외출을 응원하는 ‘특별한 지도’를 만들면서 높은 장벽을 하나 더 알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이태원역에서 찾은 한 고기 집에서는 “지도에 표시하지 말아주세요. 장애인분들이 오면 통로가 좁아져서 다른 손님들이 힘들어져요.” 라고 말했다. 안 그래도 경사진 곳이 많은 이태원역이라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 고기 집은 입구가 평평하고 규모가 커서 전동휠체어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주차장까지 있어서 너무도 기쁜 마음에 지도에 표시하고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점장은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장애인이 아닌 서포터즈들에게 이렇게 불친절한데, 실제로 장애인이 이 가게를 찾는다면 얼마나 냉대를 받을까 아찔했다. 장애인이 갈 수 있는 장소를 조사하면 할수록 장애인의 외출을 막는 것은 높은 문턱이 아니라, 사람들의 무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을 마주쳤을 때 미소지어준다면, 계단이 있더라도 옆에서 잠시 도와준다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편의시설을 갖추고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을 배려하고 동행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 사진설명
(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현장 조사 후 피드백 회의를 하는 모습 / 분기별 평가회 모습. 지난 활동의 어려움과 개선사항을 말하는 평가회를 통해 특별한 지도 그리기 활동을 개선시켜나갔다
(아래) 한 자리에 모인 특별한 지도그리기 서포터즈 1기, 2기
‘저는 당신이 밀어주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답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걷기 위해/ 세상에 나왔답니다. / 당신이 지치고 힘들 때는/ 저의 손잡이를 잡고 의지하세요.’
- 시 ‘휠체어’ 中, 정종민 시인 -
처음엔 ‘특별한 지도’를 만드는 것이 장애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사를 하며 만나는 가게에 들어가 “입구에 문턱이 있는데, 경사로를 설치하면 장애인분들도 올 수 있어요.” 라고 말하면, 대부분 “어머, 몰랐어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가운데 실제로 경사로를 설치한 가게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 경사로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모차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부모님, 이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보행약자에게도 유용한 길이 된다. 가장 작은 사람을 배려했을 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특별한 지도’는 우리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을 만들어주는 활동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가기를 바라며 '오늘 이 길, 맑음(미호 출판사)' 책으로 엮었다.
4월 장애인의 달을 맞아, 발행된 '오늘 이 길, 맑음(미호 출판사)'은 모두를 위한 길을 안내한다. 2010년도부터 '특별한 소풍'과 '특별한 지도그리기' 취재에 재능나눔을 해온 정지영 작가가 글을 썼고, 인세는 전액 밀알복지재단 장애인식개선 사업을 위해 사용된다. 책에는 특별한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휠체어로 갈 수 있는 장소들을 정리한 것이다. 경사도가 비교적 낮고, 바닥이 고른 길에 문턱이 없거나 경사로가 설치된 가게들, 엘리베이터와 장애인화장실이 있어 추천할 만한 곳들을 지도에 표시하고, 소개했다. 이 책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문 밖으로 나올 용기가 생긴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주변의 보행 약자를 생각하게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동행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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