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불편함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아니면 매일 주어진 삶에 소중함을 느끼며 살 것인가.’
밀알복지재단 후원자관리부 과장인 정종민(42·지체장애2급)씨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생후 9개월 때 뇌막염으로 오른쪽 팔을 제외한 온몸이 마비된 정씨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또래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던 터라 생애주기마다 장애를 고려한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급학교 진학, 자유로운 전공 및 직업 선택, 연애, 결혼…. 비장애인이 겪는 일상이 그에게는 꿈이자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최근 서울 강남구 재단 본부에서 만난 정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장애를 딛고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로 살고 있는 그는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장애인이기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거리낌 없이 설명했다.
“특수학교에서 초·중등 과정을 마쳤지만 고등학교는 일반 학교로 진학했어요. 특수학교를 졸업하면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거든요. 보통 전자회로기판을 다루는 기술을 배워 바로 취업을 합니다. 저는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내디딘 또래들의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학교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통학했다.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큰 숙제였다. 입학 첫해엔 “화장실에 가야 하니 길을 비켜달라”는 말을 못해 휠체어에 앉아 그만 소변을 보고 말았다. 대입을 목표로 무한 경쟁을 하는 학내 분위기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정씨는 이곳에서 비장애인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비로소 터득하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일반 고교 진학 전에는 장애인인 제가 가장 열등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들과 어울리며 생각을 바꿨습니다. 세상엔 다양한 고민과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됐지요.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모 교사 친구 등의 도움으로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그는 졸업 후 같은 대학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한 복지관에서 ‘장애인 사회복지사’인 정씨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정작 직원을 채용할 땐 뒷전이었다.
장애가 삶의 걸림돌로 느껴질 때마다 정씨는 신앙의 힘으로 버텼다. ‘어떤 시련과 장애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결국 열매로 맺었다. 석사학위 취득 후 각고의 노력 끝에 2000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는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공단 입사 6개월 만에 퇴사를 결행했다. 학원과 대학에서 웹 마스터·상담학 과정을 공부하다 국제NGO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굿네이버스를 거쳐 밀알복지재단에 입사했다.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재단에서 후원자 관리를 맡고 있는 그는 지난 4월 말 후원자를 대상으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강의하며 개인사를 공개했다. 비장애인들이 자신과 장애인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동시에 같은 인간으로 공감해주고 대우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정씨는 앞으로도 후원자들에게 가감 없이 삶을 공개하고,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자리를 계속 마련할 계획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사람’이란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저를 세워주신 것 같아요. 개인사를 공개한다는 게 부담스럽지만 장애인인 제가 안 하면 누가 하겠어요. 제 이야기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장애인들도 꿈과 희망을 품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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