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부모와 연락이 끊긴 채 수년째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해 온 14살 소년이 미술에 천재적 재능을 드러내 눈길을 끈다.
16일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 따르면 장애아동 재활시설인 경기도 용인 양지바른복지원에서 생활 중인 변유빈(14)군은 자폐증을 앓는 2급 지적 장애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 직전인 2009년 초 일반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변군은 동급생들의 집단 따돌림을 받으면서 자폐 증상이 크게 악화됐다.
이를 알게 된 시설은 변군을 장애아동 전문 재활시설로 옮겼지만, 변군은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뒤였다.복지원 관계자는 "변군은 2∼3년간 동그랗게 쪼그려 앉아 울기만 하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입소 당시 단 한 차례 얼굴을 비췄을 뿐 이후 6년째 연락이 끊긴 상태다.
고아나 다름 없게 된 변군이 세상과의 접점으로 삼은 것은 복지원 교사들이 쓰고 남은 이면지였다.
변군은 종이만 보면 연필을 부여잡고 뭔가를 끼적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낙서 수준이었던 그림은 점차 구체적 형상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복지원 관계자는 "시간을 정해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림만 계속 그린다"며 "A4용지가 작게 느껴지자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렸고, 이제는 주로 4절지나 2절지, 전지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변군은 마음의 상처 때문인 듯 구름에 집착했다.
항상 창틀이나 복도에 쭈그려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구름을 끊임없는 흐름으로 그려냈다.
마치 하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섬세하면서도 자유로운 색채로 화폭을 채우면서 변군의 마음도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유민희(39·여)씨는 "처음에는 구름만 그리다가 하늘에 걸린 전선, 전선위의 새집, 나무, 사람 비슷한 생명체로 서서히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성격이 많이 밝아져서 '선생님 오늘은 구름이 어때요'라고 물어오곤 한다"고 말했다.
변군은 지난해 모 대기업이 주최한 환경공모전에 그림을 출품해 우수상을 타낸 데 이어 '장애인 인권 감수성 향상을 위한 그림 공모전'에서도 장려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월부터는 밀알복지재단의 장애인 예술가 육성 프로그램인 '봄 프로젝트'에 참여해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고 있다.
변군은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날부터 송파도서관에서 열리는 장애 청소년 미술 전시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변군을 지도하는 시스플래닛 오윤선 대표는 "외딴 섬에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비가 오고, 먹구름이 끼고, 새가 날고, 비행기가 지나가는 일련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담겨있어 평면상의 그림인데도 동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기존 학생들에게선 전혀 볼 수 없는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며 "변군의 창의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품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변군은 유난히 먹구름을 좋아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림에 밝은 햇살도 많아졌다고 한다.
오 대표는 "변군을 지도한 2개월간 항상 화창한 날이었는데도 그림 속은 계속 먹구름과 번개가 가득하고 비가 내렸지만, 요새는 그림에서 하얀 구름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피어난 흔치 않은 재능이 묻히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