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9시 세종문화회관 세종대극장. 공연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고 마이크를 쥔 채 2900여 관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음 곡은 비제의 ‘투우사의 노래’입니다. 오늘 공연에 청각장애인도 오신 것으로 압니다. 이번에는 이분들이 공연을 어떻게 감상하는지 관객 여러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주를 준비했습니다.”
사회자가 아닌 지휘자가 공연 내용을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이례적인데 잠시 후 더 생경한 모습이 펼쳐졌다. 한창 노래하던 바리톤 이수빈씨가 곡 중간에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린 것. 오케스트라 단원들 역시 시간이 멈춘 듯 악기를 든 손을 그대로 둔 채 연주를 멈췄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바리톤 혼자 대여섯 소절을 입만 벙긋대자 일부 관객은 폭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이 퍼포먼스의 의도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