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절망 딛고 일군 내 삶,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밀알복지재단에 유산 기부한 ‘베다니 동산’ 설립자 신현국 목사
아버지-동생 잃고 사업 잇단 실패… 자녀-아내 이어 본인도 중병 앓아
단단한 신앙으로 오히려 행복해져
여생 정리 마음먹고 전문기관 찾아… 22명 지내는 생활공동체 맡기기로
참 험한 인생을 살면서 팔십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누가 보면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살아왔을까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시기마다 하나님은 저를 조금씩 꺼내주셨습니다.”
지난해 겨울 밀알복지재단에 자신의 부동산 일부를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한 목사의 말이다. 사랑하는 자녀를 일찍 잃고 부인마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보내는 등 일생을 고통스러운 시련 속에서 보낸 신현국 목사(80)는 “남은 인생을 주님을 닮은, 가난하고 장애가 많은 사람을 위해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장애인을 위해 써달라며 23년째 운영 중인 장애인 생활공동체 ‘베다니 동산’을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최근 밀알복지재단과 유산 기부 절차를 마친 그는 “주님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충성된 종아!’라고 인정받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처럼 오랜 세월 동안 환란이 극심한 인생을 살아왔다. 대학 시절에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30대에는 두 동생이 익사하는 슬픔을 겪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이 실패해 좌절을 겪고, 업종을 바꾸어 새 사업을 시작했으나 그 또한 실패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결혼 후 자녀 5명 중 3명이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셋째는 지적장애, 쌍둥이인 넷째와 다섯째는 뇌병변장애였다. 넷째는 장애가 심해 앉지도 못하고 누워만 지낼 정도였다.
“젊은 시절에는 이 같은 고통을 극복할 마음의 여유와 지혜가 없어 저녁마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취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잠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집단자살을 생각해 보았고 자녀들을 장애인시설 앞에 버릴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방황하던 그는 40대에 이르러 뒤늦게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한 상황에서 헤매던 중 경기 가평군의 한 기도원에서 마침내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그곳에서 불같이 뜨거운 성령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한 그는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됐다. 영성을 회복하면서 자녀의 장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10여 년간 목회를 이어가던 중 넷째가 20세의 나이에 소천하는 슬픔을 겪게 됐다. 이 일로 그는 장애인복지의 사명을 깨닫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며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50대 후반에 ‘베다니 동산’을 열었다.
하지만 시련은 또 찾아왔다. 건강하던 첫째마저 30대 중반의 나이에 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부인과 둘째마저 진행성근육이양증이라는 희귀난치병이 발병해 중도장애인이 됐고, 셋째도 근육이양증이 발병해 중복장애인이 됐다. 자신을 뺀 모든 가족이 장애인이 된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진 아내는 몇 년간 요양원에서 지내다 폐렴으로 별세했다. 그 역시 당뇨와 간경화로 치료 중이다.
일생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지만 뜻밖에도 그는 우울이나 낙심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만날 때마다 늘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신앙은 그의 마음에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자식들의 장애와 고난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얼마 전 팔순잔치를 한 그는 남은 인생을 잘 정리하고 천국에 가길 소원했다. 20년 이상 사명으로 일군 ‘베다니 동산’과 생명처럼 사랑하는 22명의 생활인들, 남은 자녀들을 믿고 맡길 곳을 찾는 것이 마지막 남은 과제였다. 영리사업이 아닌 복지사업은 누구에게 맡겨야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을지 더욱 고민하게 되는데, 그는 심사숙고 끝에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대신 투명성과 진정성을 가진 전문기관에 맡기기로 했다.
신 목사는 약 730m²의 토지와 약 260m²의 건물로 구성된 장애인 생활공동체를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그는 밀알복지재단과 같은 전문기관에서 시설을 운영하면 거주자들의 생활과 재활서비스 수준이 좋아지고, 직원들의 복지가 향상될 것이라고 했다. 남은 자녀들에게도 밀알복지재단이 또 다른 가족이 되어 끝까지 동행하기로 하면서 걱정을 덜었다.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삽니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로 모두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각자의 고통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겠지만, 고통 속에서 무사히 귀환하여 행복하다고 외치는 저의 인생 여정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고 위로가 되길 희망합니다. 또 장애 가정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한 나의 경험이 지금도 고난의 소용돌이에서 방황하는 여러 장애 가정을 한 줄기 빛으로 인도하기를 바랍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원문보기
“유산기부는 ‘자산’ 아닌 후원자의 ‘삶’을 기부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