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할 수 있어, 룻
2016.12.19
할 수 있어! 룻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오던 우기가 끝나고, 라이베리아는 이제 건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 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이제 앞으로 여섯 달 동안은 뜨거운 태양만 이글거리겠지요. 그래도 건기에는 땅이 말라 길 사정이 좋아져서 다행입니다. 특수학급 아이들의 집에 가려면 대부분 비포장도로를 지나야하는데, 지난 우기에는 땅이 많이 파여 통학차량이 많이 흔들리고, 진흙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레이스학교의 특수학급 아이들은 지난 9월, 두 달 간의 긴 방학을 보내고 새 학기를 맞이했습니다. 모두들 방학 숙제도 잘 해오고, 건강한 모습으로 훌쩍 커서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룻’이라는 이름을 가진 열 살 여자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의젓해지고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룻은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잘 놀고, 잘 걸으며 건강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네 살 무렵,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룻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온 몸을 뒤틀었습니다. 부모님은 룻을 데리고 라이베리아에 안 가본 병원이 없었지만 정확한 병명이나 원인을 찾지 못했고, 심지어 귀신을 쫒는다는 무당에게도 빌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룻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 가족이 시골에서 이사를 왔지만, 결국 룻은 하반신이 마비되어 걷지 못하게 되었고 대소변 조절도 어려워졌습니다.

 

그 때부터 오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룻은 집에서만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생계에 바빠 룻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고, 룻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동생들을 부러워하며 어두운 방 안에서 점점 혼자가 되어 갔습니다. 열 살이 되도록 한 번도 학교에 가 본적이 없어 알파벳과 숫자조차 몰랐습니다.
 
룻을 처음 만났을 때, 학습장애가 있는 건가 싶을 정도 나이에 비해 학습 수준이 낮았고, 수줍음이 많아 쉬운 질문에도 대답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자신은 할 수 없다고 하며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룻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성격이 밝아지고 자신감을 되찾은 것은 물론, 가장 큰 변화는 워커를 사용하여 조금씩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보장구가 없어 늘 바닥을 기어서 이동하는 탓에 늘 옷이 더러워지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두 손으로 워커를 꼭 잡고 한걸음씩 내딛습니다. 5m, 10m, 20m…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 통합학급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자신의 장애를 놀리지는 않을까, 수업을 못 따라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안 가겠다고 울며 떼를 썼습니다, 하지만 오전에는 통합학급, 오후에는 특수학급에서 공부하며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더니, 한 달 정도 후에 스스로 오전, 오후 계속 통합학급에 있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룻을 배려해주는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새 학년에도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잘 하고, 지난 시험에서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습니다. 인기도 무척 많아서, 룻 주변에는 언제나 친구들로 북적거립니다.
 
룻의 꿈은 노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가수가 되는 것입니다. 룻이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게 자라서, 꼭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할 수 있어, 룻! 


 
글과 사진 라이베리아지부 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