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제3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 바퀴 빠진 손수레
2018.02.02
바퀴 빠진 손수레
정금순
 
“까아악! 까아악! 까아악!”
  의미를 알 수 없는 딸의 괴성이 환청이 되어 들렸다. 마음이 흡사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들판처럼 스산스럽다. 물끄러미 딸의 방을 바라보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 다다랐다. 누나의 괴성에 늘 얼굴에 그늘을 달고 다니는 아들이 안쓰럽다. 딸이 훌쩍 커버린 지금 딸에게 쏟았던 그 노력을 반의반이라도 아들에게 나눠 주지 못한 것이 마음 아리다. 아들은 수업이 끝나고 학원에 가 있다.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운동장 수돗가 언덕 위에 아름드리 은행나무 한 그루가 높다. 쭉쭉 뻗은 가지 사이로 새의 보금자리가 보이고 은행나무 아래는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있다. 굵은 은행도 지천으로 여기저기 널려있다.
  우아! 저 은행, 은행이다! 은행을 보는 순간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딸은 환절기만 되면 기침이 심하다. 약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딸은 약을 먹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고 약이 한 알이라도 들어가면 뱉어낸다. 보다 못한 어머님이 은행을 구해와 꿀에 재워 하루에 10알 정도 먹였다. 은행의 효험인지 기침이 멎고 잠잘 때 그르렁거리던 가래소리도 잠잠해졌다. 무엇보다 콩과 섞어 밥을 해 먹이니 잘 먹었다. 그렇기에 은행이 노란 잎과 뒹구는 하찮은 낙엽으로 보이지 않고 약으로 보였다. 쿰쿰한 냄새쯤이야 상관없었다.
  자꾸만 저것들을 줍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배낭에 은행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빠르게 손을 놀려 은행을 주워 담으며 이렇게 주워가도 되는 건가? 가로수 은행은 중금속에 오염이 되어 있다는데, 학교 주위 은행나무는 괜찮겠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운동장에는 서너 명의 남학생들이 공을 쫓아 달려 다니고 있었다.
  흔히 부모의 자식 사랑을 애기할 때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한다. 딸은 깨물지 않아도 아픈 손가락이다. 딸이 오늘 아침 복지관 주간 보호 센터에 가야 할 시간에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집이 흔들릴 정도로 펄쩍펄쩍 뛰었다. 눈은 파르스름하니 독이 올라있다 평소의 눈빛과 다르다. 무엇일까?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흥분시켜 공포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걸까? 정신과 병원에서 처방받아 와 밤에만 먹이는 약을 한 번 더 먹여야 할 것 같다.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가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약을 먹은 지 20여 분 지나니 푸르스름하니 짐승의 눈빛 같던 눈이 평소의 맑은 눈으로 돌아왔다. 평상시 딸은 온순하다. 신변처리는 물론이고 단순한 단어 몇 마디로 의사 표시도 가능하다. 컴퓨터를 통해 노래 듣는 걸 좋아하며 먹고 싶은 것은 스스로 알아 사 먹는다. 스물다섯인 딸은 자폐성 발달 장애를 앓고 있다. 나는 엄마인데도 딸과 소통을 할 수 없고 보호만 하는 현실이다.
  날아갈 듯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은행나무 아래 지천인 은행이 욕심나 마음이 급해졌다. 은행이 가득 든 배낭을 벗어 놓고 시장 갈 때 끌고 다니던 접이식 행거와 슈퍼에서 배달 올 때 사용한 커다란 파란 비닐봉지를 챙겨 다시 은행나무 아래로 향했다. 가을 햇살이 은행나무의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운동장에는 공을 쫓아 달려 다니던 남학생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 바람만 불 뿐이다.
  은행 알은 앉은 자리 주위 것만 주워 담아도 비닐봉지가 차고 넘쳤다. 끙끙거리며 조심스레 언덕을 내려오는데 손수레 몸체가 기우뚱하더니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행거를 멈추고 뒤돌아보니 은행의 무게를 못 이기고 손수레 바퀴 한쪽이 부서져 빠져나와 버렸다. 손수레는 두 바퀴의 균형이 무너져 기우뚱거리며 굴러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억지로 끌어보지만 어깨와 허리에 힘만 잔뜩 들어갔다. 겨우 한쪽 바퀴가 구르는가 싶더니 드드득, 드드득, 끽끽 바퀴 빠진 부분이 지면에 부딪힐 때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등 줄기로 땀이 흘렸다. 한쪽 바퀴로만 구르다 보니 쇠붙이만 남아있는 쪽이 지면을 긁은 소리에 따라 마음도 요동쳤다. 거리에 사람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창피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었다. 끌고 가던 손수레를 앞으로 밀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수레 앞으로 가서 끌었다. 드드득, 드드득, 끽끽, 끽끽,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쪽 바퀴로 구르는 손수레의 소리에 온몸에 식은 땀이 났다. 겨우 은행 알을 집으로 옮겨왔다.
  대형 슈퍼에 가면 없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은행알도 사면 간단 할 것을 왜 이렇게 궁상을 떨었을까? 그것도 냄새 고약하게 나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을, 하지만 은행은 내게 있어 흔하고 하찮은 것이 아니고 귀한 약이다. 딸에게 꼭 필요한 약이다.
  물컹한 과육 속에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은행은 하얗고 뽀얀 껍질을 깨트려야만 보석 같은 알맹이가 나온다. 딸도 자폐라는 단단한 껍질을 깨트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하는 갈망는 너무 큰 바람일까?
  바퀴 빠진 손수레는 삐걱거리면서도 은행 알을 집까지 날라다 주며 제 할 일을 마쳤다. 딸의 기분에 따라 우리 가족의 삶이 곳곳에서 삐걱거린다. 딸과의 삶이 순간순간 절망적이다. 하지만 딸과 우리 가족은 각자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바퀴 빠진 수레처럼 오늘도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