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특별한 소풍 5화 아주 특별했던 지난 소풍들
2013.09.27

램프취재단의 장애인이 되어 떠나는 여행기

<아주 특별했던 지난 소풍들>

 

지난 한 해 동안 저희는 램프라는 이름으로 장애인들과 같은 조건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며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기 위한 소풍 다니며 그 이야기를 연재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되짚어 보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장애인에게는 너무 험한 둘레길

      

사실 소풍의 첫 이야기는 북한산 둘레길 이야기가 될 뻔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가 본 둘레길은 장애인이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험한 곳이었습니다.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길은 둘레길 중에 아주 일부에 불과했고 시각장애인이 지팡이를 들고 걷기에도 너무 위험한 곳이었지요. 둘레길 입구까지 갔던 램프 친구들은 결국 되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지면에 소개되지는 못했지만 이 소풍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컸습니다.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우리 생각보다 아주아주 적다는 것입니다. 산과 바다도 그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곳입니다. 영화관이나 미술관도 시각장애인에게는 아무런 재미도 없는 컴컴한 공간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무 어려움 없이 걷는 보도블럭의 턱 때문에 지체장애인들은 외출하기가 꺼려질 정도로 힘든 장벽입니다. 우리가 건강하다는 이유로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들인 것이지요. 우리는 건강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배려를 해줘야 합니다. 세상은 건강한 사람들에 맞춰져 있으니까 이방인 같은 장애인들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착한 사람들만 하는 선행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하는 당연한 일 입니다.

 

좌충우돌 대중교통 타기

 

버스나 지하철을 우리는 대중교통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장애인들은 예외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탈 때면 몇 사람 분의 부피를 차지하는 까닭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내릴 때는 열차 안에 휠체어가 탈 걸 예상하지 못하고 타려는 사람들 때문에 내릴 역을 지나치기 일쑤이지요.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가끔 오는 버스를 기다린다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는 건 거의 포기해야하는 수준입니다. 시각장에인에게는 불편을 넘어 늘 생명을 내놓고 다녀야 하는 위험이 늘 따릅니다. 지하철 플랫폼은 낭떠러지와 같고 버스에서는 급출발 급정거를 예상할 수 없어 넘어져 다치기 십상입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을 체험하는 그날의 소풍은 무려 세 시간이 넘게 소요되었습니다. 비장애인이라면 삼십분도 걸리지 않았을 거리입니다. 장애인들의 이런 답답함은 실제로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누구든지 짧은 시간이라도 장애인과 같은 조건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장애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요.

 

그냥 안 먹고 말지!

 

사람들이 많은 곳은 장애인들에게 피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불편하고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밥까지 먹어야 한다면 그것 역시 피하고 싶을 겁니다. 그래도 램프가 한 번 해 보았습니다. 주위에서 도와줘서 안전하게 마치기는 했지만 역시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체험이었습니다.

 

자기가 가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오는 형태의 푸드 코트는 아주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 곳에서 밥을 먹을 때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고를 수 있고 간편해서 인기가 좋습니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에게 자기가 먹을 걸 직접 들고 오고 다시 반납하는 건 아주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 같은 경우에는 위험하기까지 하지요.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우리 사회는 살 만한 곳인가 봅니다. 촬영을 위해 일부러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음식을 주문하고 반납하는 동안 어디선가 달려온 분들이 도와줘서 체험을 하는 대신 안전하게 밥을 먹고 그릇을 반납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을 더 가까이

램프는 올해 예술의 전당에 두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한 번은 취재를 위해서였고 한 번은 밀알의 콘서트에 초대받아서 였습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예술의 전당은 램프에게 기분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잘 되어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편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서울 시내에 예술 관련 시설들은 장애인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곳이 많으니 잘 알아보고 더 많이 누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의 전당은 작년에 갔던 서울의 공원들과 더불어 장애인들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 중 한 곳인 것 같습니다.

 

미술관 혹은 동물원 보다는 하늘을 날기

램프가 처음으로 장애인과 함께 소풍을 갔습니다. 램프가 만나고 있는 장애인 친구 정민이와 함께 과천 서울대공원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갔습니다. 정민이는 미술관에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된 어린이 미술관에서 신나게 놀고 동물원에서는 밥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무엇보다 공중을 나는 리프트를 타는 것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카메라 베터리가 떨어져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건 밝히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입니다만 지난 여행을 돌아보는 연재를 맞아 밝혀드립니다.

 

소풍의 계획

앞으로는 더 특별한 소풍이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 주변과 우리 모두가 바뀔 수 있도록 실제로 장애인들은 만나 불편한 점과 나아질 점을 들어보고 이야기에 풀어내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단을 공개 모집하고 인터넷 뿐만이 아니라 책자, SNS등을 통해 널리 퍼지도록 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소풍의 소식에 귀기울여 주세요.

 

  용호와 후니의 인터뷰


용호 

<듣고 본 것으로 그분들을 도울 수 있지만, 체험해 보면 가슴 깊이 그 분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눈을 가리고 지팡이를 들고 지하철을 타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 답답함. 그 불편함. 불과 몇 시간이 지난 후 가렸던 안대를 벗었을 때의 시원한 해방감까지!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길을 찾지 못할 때에는 정말 안대를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요.

그 불편함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소풍을 보고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게 아니라 그저 아주 작은 수고를 해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준다면 장애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코너의 주인공이어서 행복했습니다.

 

  후니

<멀쩡한 제가 휠체어를 타고 다녀 죄송합니다. 이제 저부터 달라지겠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너무 튀지는 않을까? 혹시 내가 장애인이 아니란 걸 눈치 채지는 않을까? 그래서 촬영을 할 때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음식점에 들어 갈 때 호기를 부리며 약간 경사가 있는 입구를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돌리며 들어갔습니다. 상상 속의 제 모습은 멋지게 오르막을 올라 입구로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실제의 저는 오르막을 오르지도 못하고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뒤를 따라오며 도와주지 않은 동행인을 막 욕하더군요. 장애인을 보호하는 사람이 잘 챙기지도 않는다는 질책 같았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휠체어에서 내려 서 버렸고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더라고요. 저는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인 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 창피해진 저는 서둘러 자리를 피해야만 했지요. 겨우 상황을 모면한 저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진짜 장애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최소한 휠체어가 뒤집어 지지는 않았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입구를 들어가야 했을까? 만약 다쳤다면 누가 나를 도와줬을까? 나는 언제 한 번 휠체어 탄 사람을 도와 준 적이 있나?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가 한 번 넘어져서 몇 명의 사람이라도 저와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면 넘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특별한 소풍이 더욱 기대됩니다.

 

※ 무단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 사진의 저작권은 밀알복지재단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