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특별한 소풍 3화 좌충우돌 지하철 타고 서점가기
2013.07.03

 

 

좌충우돌 지하철 타고 서점가기

 

이 이야기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되어 떠나 본 짧은 여행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짚어가며 소풍을 떠날 분들에게 편지를 쓰는 기분으로 이 코너를 연재하려 합니다. 먼저 가본 소풍이 장애 때문에 겪게 될 불편을 조금 덜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후니는 벌써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지만 별 소득 없이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급하게 외출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이 혼자이고 여자친구는 일하는 중이라 도와 줄 수가 없었다. 몇몇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보았지만 갑작스런 부탁에 시간을 내어줄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다.

사실 후니에게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건 아니었다. 다만,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졌고 그런 마음이 생겼을 때 책을 사 읽지 않으면 또 한동안 책을 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서둘러 서점에 가려는 것뿐이었다.

'그래, 혹시 그 녀석이라면 시간을 내 줄지도 몰라.'

후니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후니의 단짝이었기는 했지만 후니가 선뜻 전화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는 앞을 볼 수 없는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전화 할 데라곤 그 친구뿐이어서 후니는 결국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여보세요? 용호냐?"

", 웬일이야?"

"혹시, 나랑 서점에 책 사러 안 갈래?"

"휠체어 타고 무슨 서점이야! 그냥 인터넷으로 사!"

용호는 영 내키지 않는 말투였다. 휠체어를 탄 친구와 눈이 안보여 더듬거리는 자신이 사람 많은 서점에 간다면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볼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니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책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사. 부탁이야 같이 가자."

몇 번을 거절해도 소용이 없었고 용호는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그럼 삼십분 뒤에 공원에서 봐."

 

 

"용호야 어서 와!"

공원에 이르자 후니가 먼저 와서 용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니의 휠체어에 다가간 용호는 자신의 눈과 같은 지팡이를 접어서 후니에게 맡기고 대신 후니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이제 그 손잡이를 꼭 잡고 후니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가야만 했다.

", 이제 가보자고."

용호가 밀어주자 후니의 휠체어는 전보다 가볍게 나아갔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만나면 늘 그랬던 것처럼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휠체어는 삐걱거리며 이리갔다 저리갔다 했다.

", 턱 있는 곳에서 세게 밀어야지!"

"내가 네 조수냐? 앞에 뭐가 있는 지나 똑바로 말해!"

그렇게 싸우며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일부러 사람들이 뜸한 시간을 골라 지하철을 타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둘 다 걱정이었다.

"그런데 표는 어디서 사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 본 용호는 문득 표를 사는 일이 걱정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용호에게 표를 사고 개찰구를 빠져 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야 요즘은 다 카드를 대고 다녀. 표가 없어진 지가 언젠데."

후니는 어리둥절해 하는 용호에게 핀잔을 주고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용호는 휠체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후니는 일회용 교통카드를 사서 용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먼저 개찰구를 지나 들어간 뒤 용호가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오른쪽으로 조금 더! 그렇지 그대로 앞으로. 이제 카드를 대고 들어 오면 돼."

후니의 코치를 받은 용호는 뒤뚱거리며 개찰구를 지나 열차를 타러 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플랫폼까지 갈 수 있었다. 아직 붐비는 시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곧 열차가 도착하고 서점이 있는 역까지는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내리는 역에는 예상 외로 사람이 많았다. 후니와 용호는 잔뜩 긴장을 했다.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밀려들어오면 내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문이 열리고 서 있는 사람들이 다 내리기도 전에 한 아저씨가 사이를 비집고 열차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으려는 마음이 급해서였을까? 휠체어를 보고도 거침없이 들어와 자리를 찾으며 두리번거렸다. 설상가상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도 밀려들어와 도저히 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안되겠다 싶었는지 후니가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용호야 밀어!"

후니의 소리에 뒤늦게 휠체어를 본 사람들이 물러서 주었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후니와 용호는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제야 둘은 한 숨을 내쉬었다.

"아휴, 큰일 날 뻔했네."

"그래. 얼마나 긴장했는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네."

후니는 능청스럽게 씨익 웃더니 갑자기 혼자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로 가버렸다. 용호가 사태를 파악했을 땐 후니가 벌써 저만큼이나 멀어진 뒤였다.

", 혼자 가면 어떡해!"

뒤늦게 후니를 불러봤지만 후니는 어찌나 급했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용호는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설치된 볼록한 안내블록을 지팡이로 더듬으며 후니가 있을 화장실을 찾아가야만 했다. 안내블록은 길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화장실이 어딘지는 알려주지는 않았다. 용호는 겁에 질렸다.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용호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용호는 사라진 후니를 찾기 위해 한참동안이나 역 안을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용호는 놀이공원 미아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젠 어떡해야하나 도와달라고 소리라도 질러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 시원해. 용호 너 여기 있었어?"

후니였다. 후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타나서는 갈 길을 재촉했다. 용호는 무척이나 화가 났고 괜히 후니와 함께 왔다는 후회를 했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후니 없이는 집에 돌아갈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투덜거리지도 못하고 꾹 참아야만했다.

"에잇 뭐야. 이쪽으로는 갈 수 없잖아."

 

 

지하철 안내판에는 서점으로 바로 연결되는 출구가 표시되어 있었지만 휠체어를 탄 후니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채로는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오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후니는 속으로 다른 길이라도 갈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길이 좁아서, 계단이 가로 막아서, 바닥이 험해서 가지 못했던 곳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후니와 용호는 마침내 서점에 도착했다. 후니는 신이 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용호는 쭈뼛쭈뼛 후니를 따라다닐 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 용호는 책을 볼 수 없지.'

후니는 뒤늦게 너무 이기적으로 행동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집어 드는 책마다 어떤 내용의 책인지 용호에게 이야기 해주기 시작했다. 그림이나 사진이 나온 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발견하고는 한참동안이나 내용을 읽어주기도 했다. 후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용호의 언짢았던 기분도 슬며시 풀어지고 있었다.

 

 

일회용 교통카드 판매기에는 음성안내가 지원되며 역무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버튼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휠체어를 위한 열차 칸에는 별도로 휠체어 그림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칸에는 휠체어가 서 있을 공간과 안전벨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형 건물의 회전문에는 회전을 천천히 하는 버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버튼을 누르면 휠체어를 타고 문을 통과하기가 수월해집니다.

지하철 고속터미널 역에서 9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는 장면을 촬영하려고 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방법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사진을 보면 환승을 하려고 헤매던 중에 공사 중인 지하도를 건너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곳을 지나자 계단이 나와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처음이라 헤맨 것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용 엘리베이터에 이러한 안내가 없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소풍에서 후니는 휠체어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용호는 눈을 가린 안대를 한 번도 벗지 않은 채 여행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불과 몇 시간동안이었지만 여행이 끝난 뒤에 둘은 녹초가 되어버렸지요. 특히 어떤 점이 힘들었나 들어볼까요

 

후니의 인터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답답해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럽지요. 그리고 정말 힘든 건 오르막이었어요. 아주 완만한 경사라도 휠체어를 밀고 가려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지요. 처음 휠체어를 탔을 땐 경사로에서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 크게 다칠 뻔했지요. 그나마 오늘은 친구가 뒤에서 밀어주고 수다도 떨 수 있어서 아주 편한 여행이 되었습니다.

 

 

용호의 인터뷰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는데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또 어떻게 가야하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아무리 멋지게 지하철역을 꾸미고 예쁘게 열차를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안전하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불과 한 정거장을 가는데 사십분 이상이 걸렸는데 한 겨울인데도 땀이 날 정도로 힘이 들었습니다.  

 

Lamp

Lamp는 세상을 밝혀 따뜻하게 하자는 의미로 7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입니다. Lamp의 봉사자들은 실제 장애인이 아닙니다. ‘조금 특별한 소풍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장애인이 겪을 어려움들을 체험해보고 실제 장애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쓴 여행기입니다. 장애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이 코너를 연재하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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