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매거진

제2회 스토리텔링 공모전 우수상 - 한턱 쏜다
2018.01.03
한턱 쏜다
- 박  영
 
  나에게 형이 있어서 좋았던 일은 하나도 없었다. 6살 많은 형은 뚱뚱하고 안 씻어서 더럽고, 담배를 피우고 양치를 안하기 때문에 도시 뒷골목 쓰레기 봉투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형은 병원 약을 오래 먹어서 그런가 뚱뚱하고, 항상 얼굴이 부어 있었다. 머리는 스포츠형으로 깍고 옷은 항상 반바지에 러닝 차림으로 집안을 누비고 다녔다. 가끔 그 차림으로 도시 야경을 보겠다고 아파트 옥상을 오르내렸으니, 부모님의 한숨은 가실 날이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친구들이 우리 아파트에 놀러 와서, 내 방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재미있게 들렸던지 형이 방문을 열어 젖혔다. “동생아, 나다. 야~! 니네 다트 하냐? 그런데 너 돈 인냐? 안녕. 불인냐? 예쁜 것들. 사라랑해~~” 형은 오른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큰 소리로 외친 후, 부끄러웠는지 문을 훽 닫았다. “야, 누구야?”라고 친구들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다트를 던지면서 말했다. “형.” 그런데 다시 문이 열리더니 형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야! 내가 누구냐? 장군의 아들 아니냐? 하하하~. 이 자시들 눈이 똥그래져네. 그런데 너 불 인냐? 나 불이 엇어서. 너 돈 인냐? 사라해~~.” 형은 특유의 더듬는 말투와 함께 눈을 크게 뜬 체로, 빠르게 말한 후에 문을 닫았다. 친구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며,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야, 니네 형 뭐라는 거야!” “아무 얘기도 아니야. 그냥 막 떠드는 거야.” 친구 L이 형의 표정과 말을 흉내 내며 K와 L은 마주 보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나가 그렇게 함께 놀고 좋아하던 친구들이었는데……. 다음날 학교에 가니 벌써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 “야, 니네 형 정신병자라면서?” “바보라더라.” 더 못된 친구는, “못난이, 바보, 거지. 세가지 다 갖췄네.” “그럼, 이거네.” 하면서 검지로 자기 머리를 빙빙 돌리며, 미쳤다는 표시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랬다. 우리 형은 정신 장애 2급 장애인이다. 형을 생각하면 더운 여름 아스팔트에서 뿜어내는 지열과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던 형이 최근에 00시 공공근로를 다닐 정도로 호전되었다.
  그날은 형이 일어나자마자 ‘다다다다’ 소리와 함께, 거실을 뛰어다니며, 모든 가족들을 깨우고, 오늘 저녁에 일찍 오라고 한 것이다. 아버지하고는 “자 도장 찌꼬.”라고 하며, 손가락 도장까지 찍으며 다짐을 받아냈다. 그리고 “레토랑 가. 레토랑 가.”를 계속했다. 저녁 6시 조금 전에 공공근로를 마치고 집에 온 형은 부엌에 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더니, “와왕~”하며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아~안대. 밥하면 안대. 레토랑 가.”하면서 때를 썼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꼭 오늘 가야되느냐고, 답답해 하시며 어머니가 다시 말씀하셨지만, 형의 성화에 못 이겨 30분 후에 들어오신 아버지와 함께, 우리 가족은 형이 말한, 단골 페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우리가 1달에 한번 정도 가는 단골 페밀리 레스토랑은 사람들이 많았다. 형은 자신의 지정석인 안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형은 그 자리에 앉으면 늘 창문에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도시 밤의 야경과 지나가는 차들, 그리도 사람들을 바라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그날만은 달랐다. 창밖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 반듯하게 앞을 향하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웨이트리스가 메뉴를 내밀자 형은 받아들어 활짝 펼치고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뭘 먹겠냐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자기가 먹을 것만 정하고는 창밖에 열중하는데 말이다.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종업원이 계산서를 테이블 끝에 슬쩍 내려놓고 갔다. 그러자 형은 계산서를 재빨리 자기 앞으로 놓으면서 아주 잘 알겠다는 양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그러는데 큰 아들?”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잽싸게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내가 주문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을 때, 형이 계산서를 펼쳐 보며 무슨 말을 했다. “아~우씨*&%……!”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큰 아들, 계산서 이리 주고 얼른 먹어라. 다 식겠다.” 아버지는 고기를 자르던 나이프를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형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옆에 나두었던 자신의 잠바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어머니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다음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어머니의 눈이 봉투 위를 떠나지 못했다. “여보…….” 어머니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봉투를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나도 옆에서 들여다봤다. 봉투 겉에 글자가 찍혀 있었다. 급여(2015년 9월분)-공공 근로 00시 “이게 뭔데?”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의 눈이 어렴풋이 젖어 있었다. 고개 숙인 어머니의 어깨도 파르르, 작은 물결이 치고 있었다. “아이구~! 우리 아들이 1달 동안 페인트 칠하고 받은 돈으로 스테이크를 사주는 거구나. 고맙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흑흑 소리를 내시면서 울기 시작하셨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셨다. 나는 어머니 쪽을 보며 얘기했다. “왜 그러는데?” “어어, 이건 말이지.”하면서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시고 얘기하셨다. “이건, 형이 일해서 받은 첫 월급이다. 그래서 우리들한테 맛있는 것 사 주려고, 한거야.” 어머니의 목소리는 울음소리에 섞여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들아, 으으으윽, 으으으윽. 고맙다.” “우와, 형이 한턱내는 거야. 대단한데 다시 봐야겠다. 우리 형!” 내가 얘기하자 형은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띠고는 의기양양했다.
  나는 딱 한번 형이 일하는 곳에 가 본적이 있다. 급한 볼일이 생겨 외출한 어머니를 대신하여 내가 데리러 간 것이다. 형은 00시 공공근로의 일환으로, 공원 화장실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버스를 내려 조금 걸어가자, 야외에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고 형은 모자와 추리닝을 입고 열심히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형은 땀이 흐르는지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왼쪽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부치고 있었다. 형은 내가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을 알고는, 약간 부끄럽다는 듯 혀를 살짝 내밀었지만 기뻐하는 눈치였다. 형은 그렇게 일해서 받은 돈으로 식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한 것이다. 나는 봉투 속이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들어 있을까? “자, 다들 맛있게 먹자꾸나.”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꼬리를 닦았다.“아~어머니, 우이마. 싸라해. 아지?” 형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를 들여다보았다. 어머니가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 안 울께, 고맙다.” 어머니는 말씀하시고 포크와 나이프를 드셨다. “맛있구나!” “와, 정말 이렇게 맛있는 건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것 같다.” 형은 나의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게 다시 확인했다. “맛있쪄? 조아?” “응, 참 맛있어. 형, 고마워.” 가족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은 형은 마치 어린애처럼 손뼉을 짝짝치며 좋아했다. 나는 살짝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형 월급, 얼마나 받았어요?” 아버지는 봉투 속에서 지폐를 살짝 꺼내 보여 주었다. 오만 원 권이 3장 고개를 내밀었다. “에게, 겨우.” 나는 흠짓하며 말을 삼켰다. 형이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월급이 고작 이 정도인 것이다. 식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형에게 계산서와 아까 건넸던 형의 월급봉투를 내밀었다. “큰 아들이 받은 월급이니까, 직접 계산해라.” 형은 계산서와 월급봉투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의기양양하게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당황하여 아버지의 옷을 당기며 귓속말을 하였다. “아버지, 그 돈 가지고 안 되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이십 이만 원입니다.” 형은 봉투 입구를 벌려 거꾸로 들어, 들여다보며 돈을 전부 꺼냈다. “크크, 여기쪄오.” 라며 지폐를 힘차게 내밀었다. 그 손에는 오만 원 권이 여섯 장 쥐어져 있었다.